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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겨울 산행을 좋아하는 이유 세 가지 그리고...
    산(山), 산(産), 산(散) 2020. 12. 28. 16:26

    겨울철에 산에 오르니 겨울 산행이라 부르겠지만 계절에 상관없다. 한 여름에도 높은 산에 오르면 겨울 산행이 되곤 한다. 굳이 겨울 산행이라고 고쳐 부르는 것은 기후 조건에 따라 산행의 방법이 정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겨울철에 하는 겨울 산행을 특별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산이 보여주는 경치가 다른 계절과는 다르게 빼어난 것과 차가운 기온 탓에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산행의 묘미를 어찌 경치 구경에만 국한시킬 수 있는가…? 물론 겨울 산이 더없이 아름다운 극한의 미를 가르쳐주지만 겨울 산행을 하다 보면 심오하기도 하고 살아있는 그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겨울 산행은 또한 그 방법과 성격을 달리 할 때마다 다가오는 맛이 다르다. 마치 같은 음식이라도 식당마다  것만으로도 궁극의 가치를 안겨준다. 

     

    겨울 산행을 염두에 두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추위와 눈폭풍과같은 극한의 조건이다. 평지에서 마주치는 겨울보다 산에서 마주치는 겨울은 춥고 혹독하기까지하다. 기온은 더 차고 바람은 매서우며 기후의 변화가 빠르다. 산행을 시작한 초보자는 겨울 산행을 꺼리게 된다. 익숙하지도 않거니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장비 구입이 부담스럽다.  혹자는 알고있겠지만 겨울 산행에 필요한 장비는 값이 나간다. 초보자들이 망설이는 이유중 하나다. 

     

    겨울 산행은 힘들고 어려울까? 대체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친절하고 솔직한 대답이다. 물론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겨울 산행은 약간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으로 6-8 시간의 산행이 여기에 적용된다. 등반고도는 약 2천미터 정도이고 거리는 왕복으로 약 15=20 킬로 정도를 상상하면 된다. 이 곳 워싱턴(주)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등산로 입구는 평균고도가 1,000 미터 정도다. 여기에서 해발 고도 1500-2000 미터를 올라가는데 겨울철에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곳은 해발 2,000 미터다. 이 지점부터 시작되는 등산을 편이상 ‘겨울 산행’이라고 부르자. 눈이 쌓인다는 것은 그곳의 기온이 항상 영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런 고산지대는 일년 중 겨울이 6개월 이고 여름은 2 개월 정도로 짧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다면 6월에 찾아가도 겹겹이 쌓여있다.  

     

    주변 지인들에게 겨울 산행을 자주 권유하곤한다. 세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첫째로 한적하다. 추운 겨울에 산을 오르는 사람은 미리 정해져 있다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굳게 믿고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이 지역의 특성상 나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진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아무리 유명 브랜드의 비싼 등산복이라도  주룩주룩 내리는 빗발을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한다. 길어봐야 5-6 시간일 것이다. 약간의 노하우가 적용되어야 비와 습기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있다. 그 노하우는 당연히 경험에 의해 쌓이고 터득하게된다. 두번째 이유는 고요함과 적막함 이다. 생활의 대부분은 다양한 종류의 소음과 함께한다. 잠드는 그 순간에도 무언가 소음이 존재한다. 심장과 마찬가지로 귀와 소리기관은 쉴 틈이 없다. 그런 귀에게 약간의 쉴 틈을 주고자 한다. 귀가 쉬고 있을 때 적막함이 찾아온다. 그렇다고 전혀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내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바람소리도 들리고, 물 흐르는 소리도 들리고, 눈내리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소리는 소음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일명 화이트 노이즈 다. 적막해지면 쓸데없는 잡념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몇 가지 집중하고픈 상념에 빠져든다. 대체로 “사는게 뭐지?” 등등 ‘쓸데없는' 잡념에 불과하지만 가끔은 필요한 생각들이라 그저 늘어만 놓는다. 세번째 이유는 솔직함 이다. 겨울 산행 와중에 가장 극적인 순간은 내가 산의 솔직한 모습을 보았을 때다. 혹자는 “산이 항상 솔직하지” 라고 의아해 하겠지만 여름산과 겨울산은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다른 모습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선호도에 직결된다는 것을 전제로한다. 나의 관점에 따르면 봄부터 여름을 지나는 산은 과장이 심하고 허세를 부리기 십상이다. 산이 지니고 있는 자만심이라 수려함을 뽐내는 것을 뭐라 말하겠는가… 그 자체로도 산은 대단하다. 그러다 가을을 보내고 겨울로 깊어질 수록 산은 허울을 모두 벗어버린다. 마치 적나라하게 묘사된 누드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보는이의 눈은 즐겁고(?) 허심탄회하게 솔직한 자태에 반하게 된다. 그 거대한 나체속에 내가 잠겨드는데 어찌 거짓과 허위에 물든 ‘나'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 벗어버리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과정이 겨울 산행의 전부가 아닐까 싶다. 

     

    소리 얘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더 보태려 한다.  혹시 눈내리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있는가? 눈 내리는 소리의 첫 기억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오른다. 함박눈이 내리던 날 놀이에 열중하다가다 가만히 들려오던 눈 쌓이는 소리가 아직도 가물가물하게 들린다. 그 소리의 기억이 다시 소환된 것은 산에서 였다. 도시에서는 웬만해서 눈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눈 내리는 날도 드물지만 소음때문에 좀처럼 귀 기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산에서는 귀가 활짝 열려서 그런지 눈내리는 소리가 잘 들린다. 걸음을 멈추고 소리에 집중하다보면 가까운 곳에서부터 눈내리는 소리가 들려오다 점차로 더 먼 곳에서 눈내리는 소리를 듣게된다. 과장을 섞어서 표현하자면, 산 전체가 눈 내리는 소리로 울린다. 궁극의 경지에서만 듣게된다는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보려고 찾아가는 것이 겨울산이다. 그래서 의미가 다르다. 

     

    겨울 산행은 얼마나 위험할까? 겨울산 자체가 실제로 위험하다. 자칫 방심하다보면 실수하게 되고 곧 위험에 처하기가 십상이다. 겨울산에서 낭패를 당하는 경우는 대부분 무지에서 비롯되고 교만해지면 실수를 저지른다.  장난기가 발동해도 자칫 다칠 수 있다.  실수의 시작은 겨울산을 대수롭지 않게 대하거나 여름산이나 가을산과 같이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산은 원래 인격을 가진듯 하다.

    아니 인격보다 몇 수 높은 산격을 갖추고 있다. 산격이 인격을 압도하고 짖누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산을 함부도 대하면 인격이 큰 상처를 받는 것도 당연하다.    

     

    겨울산은 마치 까탈스러운 성격을 가진 사람같다. 근엄하고 점잖아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록 변덕스럽고 고집스럽고 사납기까지 하다. 그래서 겨울산은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다가서야 한다. 산을 사람 대하듯 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면 반드시 후과를 치르게 된다. 무한한 경외심을 가져야 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변덕과 분노를 받아들이고 참아내야 한다. 모든 산행이 그렇듯 겨울 산행도 결국은 자신과 마주치는 일이다. 때로는 자신과의 싸움으로 발전한다. 모순과 격한 갈등이 겪어야 성장하고 발전하듯이 겨울 산행은 결국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의 연속이다. 

     

    겨울산이 나를 시험할 때가 있다.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거나 갑자기 기온이 떨어질 때, 난데없이 짙은 구름이 몰려와 한치 앞을 볼 수 없도록 시야를 가릴 때 등등 일일이 표현하기도 쉽지 않은 생소한 조건에 맞다뜨리면 적지 않게 당황하게 되고 급기야 두려움 속에 갇혀버리게 된다. 어떤 위기에서든 불안감이 엄습해 올 때가 가장 위험하다. 사실 불안함과 두려움이 나를 쓰러뜨리는 것이지 매서운 눈보라는 그 이후에나 걱정할 일이다. 몇 년전에 화이트 아웃(White Out)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눈으로 뒤덮인 정상 부근에서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니 점차로 원근 감각을 잃게되더니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보라가 잦아들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것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로 받아들이는 즉시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이윽고 공포감이나 불안감이 밀려오게 된다.  차분해지려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겨울 산헹이든 여름 산행이든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여름 산은 그나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찾아다닐 수 있지만 겨울 산에서 길을 잃으면 좀처럼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눈으로 뒤덮여인 산에서는 산길은 사라지지가 십상이다. 방향감각도 잃게된다.  무엇보다도 무름까지 뒤덮인 눈길에서는 속도를 높일 수 없고 빨리 지친다. 주변의 풍경이 비슷비슷하여 마치 같은 장면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동영상을 보는 것같다. 길을 잃었다고 판단되면 그 자리에 표식을 남겨두는 것이 좋은 방법이고 주변의 지형적 특성을 기억해야 한다.  겨울산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지형 지물에 익숙해 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도와 나침판을 지참하는 것은 첫번째 할 일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다면 휴대용 GPS를 가지고 다닌다. 

     

    얼마전에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겨울 산행을 숙지하기 위한 산행을 다녀왔다. 나를 비롯한 몇몇 선배(?)들의 경험담을 곁들인 일종의 입문과정이자 초등학습 이었다. 그 때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눈 덮인 산에서 어떻게 길을 찾죠..?”  지도나 GPS를 가지고 있어도 눈으로 뒤덮여 가려진 산길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길 두길 깊이로 눈이 쌓여있으니 윤곽이나 흔적 조차 보이지 않는다. GPS에 등산로를 미리 입력해 두면 자기 위치와 산길의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그 지점에 서있어도 구분하기가 어렵다. 겨울산에서 길을 찾거나 길을 개척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몇가지 방법이 있다. 나 역시 선배들로부터 전수받은 노하우를 전한다. 그러나 반드시 모든 경우에 반드시 적용되는 것은 아님으로 참고용으로 기억해 두기 바란다.   

     

    그 첫번째는 지형에 익숙해져야 한다. 사실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있다. 산을 자주 다니다 보면 산의 모양새가 속속 시야에 들어오게 되고 산길의 위치를 짐작하게 된다. 산길은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대분의 산길은 걸음걸이의 모양새로 만들어진다. 또 어떤 산길은 벌목하며 만들어진 산판길을 그대로 사용했다. 산판길 역시 지형맞게 내리오르기에 편한함을 따르며 만들어졌다. 산길은 능선을 아래쪽을 따라가며 평평한 지형을 찾아가며 줄곧 이어진다. 산길의 지형적 특성에 익숙해지다 보면 먼 발치에서도 어림짐작으로 찾아낼 수 있다.

     

    두번째 방법은 시선을 높이는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시선은 무의식중에 땅으로 향하게 된다. 조급해지고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시선을 위쪽으로 올려야 능선이 보이고 산길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 내려가는 길을 찾을 때에도 시선은 위로 올려야 한다. 산길이 나있는 곳에는 나무는 없거나 가지가 짧다. 그 빈 공간을 찾으면서 앞으로 나가야한다. 시선을 하늘로 향해야 하는 또다른 이유는 표식을 찾기 위해서다. 고맙게도 산림청 직원들이 산길을 답사할 때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몇가지 방식으로 표식을 해두는데 그 위치가 높은 곳에 있다. 가지에 빨간색(때로는 분홍색) 리본을 매달거나, 금속이나 나무로 된 표식을 눈높이보다 한참 높은 나무 등걸에 단단히 박아놓는다. 이러한 표식에 익숙해 지려면 많이 다녀봐야 한다. 즉 경험이 켜켜이 쌓여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세번째 방법은 경사진 곳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경사진 곳에는 산 길이 없다. 산에서 사람이 설수 있는 경사 각도는 10-15% 정도가 최대치다. 모든 등산로는 그 룰에 따라 만들어졌다. 길을 잃었다고 판단된다면 하산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거리를 줄인다고 경사면을 택하면 점점 곤란해지는 상황에 맞다뜨릴 수있다. 애돌아가는 듯해도 걸음걸이가 편안한 낮은 구릉을 택해야 한다. 낮은 경사면을 찾으려면 지형지물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특히 눈이 쌓였을 경우 나무와 눈 표면의 각도를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하산을 결정했으면 그 지점에 표식을 남겨놓는다. 만에 하나 길을 찾지 못했을 경우 다시 되돌아 가야한다. 

     

    겨울 산행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한다. 해가 빨리 지기 때문이다. 평지에서보다 한 시간가량 더 일찍 해가 지고 어두원진다고 지례 짐작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평소보다 한 두시간 여유를 두고 계획하는 것이 편리하다. 산행 시간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 산행을 즐기려면 무엇보다도 평소에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체력을 강화시켜야 한다. 추위에 견디는 훈련을 따로 해둘 필요도 있다. 겨울 산행을 하기전에 충분한 영양 공급을 해두는 것도 도움이된다. 하루 정도는 끼니를 걸러도 될 만큼 식사를 충분히 해두는 것이 만일의 사태에도 도움이되고 추위에서도 강해질 수 있다.

     

    겨울 산행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아드레날린을 다 소진할 즈음에 엔돌핀이 마구 분출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평소에 쌓아놓았는 잡다한 종류의 스트레스는 날아가버리고 새로운 '나'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엔돌핀에 한번 중독되면 웬만해서는 멈출수 없다. 겨울 산행을 결코 끊을 수 없는 치명적인 이유다. 유익한 것만이 가득 채워진 겨울 산행을 성공적으로 그리고 아무런 탈도 없이 즐기려면 장비를 옳게 갖추고 사용할 주 알아야 한다. 장비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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